과떼 20년선교를 떠나며

지난 20년간 과테말라 선교 상황의 4대변화

  1. 현지 교회의 자립과 성장
    20년 전 과테말라의 많은 지역 교회들은 외부 선교사 의존도가 높았다. 신학교육, 예배 인도, 행정 등 대부분의 사역이 외부에서 온 일꾼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지인 지도자들이 꾸준히 양성되고, 현지 사역자와 성도들이 교회 운영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신학교와 제자훈련 프로그램의 확대, 그리고 청년 리더들의 등장으로 교회는 점차 자립적인 구조로 변모했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전부터 공동체 학교에 도입한 Pastorcitos/Seguidores 즉 소목자/예수 제자 씨스템은 초등5년이후 자원제로 예수 제자운동에 참여, 실제 학교생활 및 교회생활에 적용하여 섬김, 봉사, 헌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는 것을 적극 장려해왔다. 대표적인 모델이 갈릴리 크리스찬 사립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며, 현재 학교의 교목이요, 여러 청소년/어린이교회들의 지도자인 헬무트이다. 그는 가정의 가난으로 인해 동네 초등교 졸업후 6년간 학교를 쉬다가 19살에 늦둥이로 갈릴리 중학교 1년에 입학, 장학생으로 고교를 졸업, 동시 방송통신 신학교를 졸업후 전도사/찬양사역자로 공동체에서 섬겼고, 현재에 이르렀다. 거의 동시 또는 그후 제자훈련/소목자 사역을 마친 교사들을 포함한 다른 청년들도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학교 또는 인근에서 교사/사무원 및 어린이/청소년교회 지도자들로 섬기고 있다. 한편, 이들은 대부분 주중엔 공동체에서 섬기지만,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하루종일 주말 대학(온라인, 치섹분교, 또는 꼬방)에 가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등 분주한 삶을 살고있다. 과거엔 선교사들 주관으로 인도해 왓다면, 이제는 자기들 스스로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어느정도 마련하게 되었다.
  2. 사회·경제적 변화와 복음의 확장
    과테말라의 사회·경제적 변화도 지난 20년 동안 선교 환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제성장과 도시화,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과거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오지와 마을에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역이 다양화되었으며, 교육·의료·아동 지원 등 통전적 선교(wholistic mission: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육신의 가난, 질병, 차별 등 사회적 문제까지도 아우르는 복음의 확대적 해석)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염소, 돼지, 망고, 레몬, 아보가도 묘목등의 번식 분양사역, 조립침대 공급과 합동결혼, 마을교통, 식수공급 개선 등 구제 사역과 현지시청과의 협력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복음의 실질적 영향력이 생활 전반에 스며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일대선교사들의 노령화와 후대 선교사들의 결핍으로 몇몇 부대 사업들은 중단되고 대체로 학교사역과 복음사역, 오지마을 협력사업으로 치중케 되었지만, 다른 한편 제자로 양육받은 소목자/제자들의 성장을 통해 후대선교사들의 부재를 대체하게 되었고, 노령의 선교사들은 어느덧 성숙해진 과거의 어린 제자들을 앞세우고 이제는 대체로 뒷전에서 격려와 협력자로서 저들을 돕고 있는 편이다.
  3. 문화적 이해와 상호 존중의 심화
    언어의 장벽과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선교 사역의 한계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마야의 후손들인 이들에게 학교교육을 비롯한 선교사를 통한 다른 문화 나눔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고, 또 스패니시를 배운적인 없는 가난한 부모들에게 6년 또는 8년의 유치원/초등교 과정은 감당할수 없는 경제적/시간적 부담이었다. 흔히 부모들은 3-4학년쯤 되어 스패니시 책을 읽을수 있게되면 “얘, 이제 넌 책을 읽을 줄 아니, 그만 다니고 네 동생이 대신 다니게 하자”하며, 아들이면 옥수수 밭에 데리고 가서 경작을 돕고, 딸이면 집에서 젖먹이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 대소사를 돕게 하였었다. 그런 생소한 문화적 유산을 가진 저들에게 선교사들의 반복된 설득으로 교육의 필요성과 새로운 문화에 도전하도록 인도해 왔다. 또, 선교사들도 현지언어, 찬양과 미술, 지역 축제와의 연계 등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역이 활성화되었다. 갈릴리공동체를 통하여 치섹의 인근 커뮤니티는 더욱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의 메시지가 현지 삶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게다가 여름이면 미국의 여러 한인 교회들에서 보내오는 단기선교팀과의 협력으로 오지마을에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찬양 나눔, 의료적/교육적 사역, 지역생활 개선과 상호교제 등 통해 고립되었던 현지인들의 전통적 소외감과 심령이 많이 열리게 되었고, 과떼 특유의 부족언어들 위주 삶에서 스패니시 언어의 유통으로 점차 변모되어 왔다. 과떼말라는 중남미 라틴아메리카 40여개국중 유일하게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안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로 23개의 부족언어들이 시골등 지역사회의 소통수단인 나라다. 치섹은 처음 도착하였을때, 90%이상이 껙치언어 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 오지마을을 방문하면 초등학교 교사2-3명을 제하고는 껙치언어를 사용하였었다. 대개의 시골의 지방학교에서는 스패니시를 가르치되 지금도 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한글이 한국내 100%에서 사용됨에 반하여 과떼에서는 오직 주로 도심지(Urban area)에서만 사용된다니 얼마나 큰 대조인가! 국가의 경제, 정치, 문화, 교육등 모든 영역에서의 발전에 큰 영향이 됨은 당연!
  4. 차세대 선교 인재의 등장과 세대교체
    20년 전만 해도 선교 현장의 주된 사역자들은 외국에서 온 경험 많은 선교사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현지에서 훈련받은 젊은 리더와 차세대 사역자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현지 문화를 깊이 이해하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선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SNS, 온라인 미디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청년 선교, 예술·스포츠를 통한 복음 전파 등 새로운 사역 모델도 풍성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과테말라 선교의 지속 가능성과 현지화에 큰 동력이 되고 있다.

 

  • 과떼말라의 최근 몇 년간 개인소득 상승에 가장 기여한 요인은 단연코 미국에서 국내로의 송금 급증이다. 이것은 특히 지난 몇 년간 바이든 정부의 무국경 불법입국허용 정책에 힘입었다. 국가전체로 보아 약20%의 GDP에 해당. 수백만 가구의 소비와 생활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특히 치섹의 경제상황은 크게 변했다. 대단위 오일팜(산업용 오일추출 종려수) 플랜테이션의 개발과 지난 수년간 미국을 국경없이 불법이주한 대표선수가 된 것이 청년 농촌인구와 농촌경제에 엄청난 상승을 가져왔다. 단기팀과 같이 오지마을들을 방문할 때 많은 새로운 건물들과 길가의 상점들, 철물점의 엄청난 증가가 설명해 준다. 금년 단기팀과 오지마을들 여럿을 방문하면서 가족상황을 물어보면, 가정의 아버지, 아들/딸들이 현재 미국에 가 있다는 말을 너다섯 집을 건너 어렵잖게 듣는다. 혹자는 시골 노동인구들의 최소15%가 도미해 있다고 추정한다.
  • 카톨릭 대 개신교 인구의 변화도 개신교가 교차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조사 출처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으나 2011년 카톨릭 50%, 개신교 35%에서 2024년 카톨릭은 39%로 떨어지고 개신교는 약40%로 대체로 개신교가 카톨릭을 간신히 넘어서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중남미는 15세기말에서 카톨릭의 강요된 복음선교가 지난 500년간 전통적인 현지 원주민 신앙과 왜곡, 혼합되어 유지되어오다가 개신교가 들어와 복음적으로 점차 변화되어 왔다. 사실상 중남미에서 카톨릭은 완전히 정통기독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혼합종교(Syncretism: 로만 카톨릭에 16세기 초부터 멕시코 “성처녀Guadalupe” 과달루뻬와 토속신앙인 마시몽 숭배가 혼합되어 “오직 예수”중심을 희석시켜 멕시코 인디언들을 최소한의 저항으로 카톨릭에 융합시키기 위한 바티칸의 의도로 시작, 여러 나라에 유사하게 파급됨)로 참된 기독교 복음확산에 걸림돌이 되어왔다. 20세기초부터 여러 중남미 여러 국가들에 전파된 개신교 특히 오순절교의 포교 시작으로 오늘까지 줄기차게 부흥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 과떼 전체인구의 50%가 농업에 종사, 대부분 소작농. 주요 수출품은 주로 일차 산품인 커피, 바나나, 설탕, 저등급 원유 등으로 과떼말라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8위. 국민의 51%가 빈곤층, 이것은 20년 전의 70%에 대비, 상당한 향상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에 상당한 노동이민으로(지난 수년간 불법유입을 포함) 저들이 가족들에게 보내는 송금이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AI에 문의한 최근 미국내 거주하는 과떼말라인들의 송금규모는 과떼 GDP의 약20%이며, 과떼 연간예산액의 180%에 해당할 정도이다.
    2005년 개교당시 교내에 주차한 자전거의 수가 불과 10대 정도되었는데, 이제는 자전거는 말할 필요가 없고, 오토바이/스쿠터가 수십대, 또 개인 승용차(used cars지만)도 여러 대가 되어 주차공간을 크게 확대해야 했다. 아침 등교시간에는 특히 뚝뚜기택시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너무많아 중고생들은 7시에,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은 7.30분으로 차등제를 두어야 했다. 학생수가 2005년 100명 미만에서 2025년 550명, 이미 고등학교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지가 10여년되어 치섹은 물론 인근 도시에서 여러 영역에 취업하고 있다. 2시간 떨어진 도청소재지인 꼬방의 여러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꽤 되며, 공동체 학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졸업생도 적잖다.

맺으며: 새로운 소명과 비전

20년의 선교 사역을 돌아보면, 변화는 멈추지 않았고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과, 현지 공동체의 놀라운 성장과 자립,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세대가 어우러지는 선교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성경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메시지로 가르치신다. 시편67은 이렇게 선포한다: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2,3,7절). 하박국 선지자도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2.14)라 하였으며, 신약성경의 4복음서는 한결같이 거의 말미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마28.19-20) 하며 주 예수의 복음을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할 것을 이 땅에서 남기신 가장 중요한 과제중 하나로 맡기시고 승천하신 것을 본다(막16.15-20; 눅24.46-47; 요20.21-23,31) 특히 행전1.8의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1)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신 큰 목적의 하나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함이라는 것과, (2)“예루살렘(이스라엘처럼 당시 바로 가까이 있고 동질문화 가진 곳), 유다(이웃에 있으며 거의 동질문화), 사마리아(가까이 있지만 이질적 문화), 땅끝(멀리있고, 전혀 다른 문화지역)에 복음을 전할때, 상이한 거리와 문화권 선교는 선택적인 “OR”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AND” 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내 민족, 내 동포에게만(북한 포함) 복음전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스라엘에나 인도나 마다가스카르 등 땅 위의 모든 곳에 복음이 선파되어야 함이 성경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심정임을 깨닫는다. “우리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현지 교회와 함께 세상을 밝히는 복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길 소망한다.